10위 : 2013/14시즌 리버풀
· 포메이션 : 4 - 3 - 3
GK - 시몽 미뇰레
DF - 글렌 존슨, 마틴 스크르텔, 마마두 사코, 존 플라나간
MF - 조던 헨더슨, 스티븐 제라드, 필리페 쿠티뉴
FW - 다니엘 스터리지, 루이스 수아레스, 라힘 스털링
당시 감독 - 브랜든 로저스
성적
- 리그 : 2위
FA컵 : 16강
리그 컵 : 32강
“우린 이 기회를 놓치면 안 돼!”(“We don’t let this slip!”).
그러나 결국 그들은 미끄러지고 말았다.
브랜든 로저스 감독이 이끌었던 13/14시즌 리버풀은 이 리스트에
있는 여타 팀들에 비해 괄목할 만한 성적을 거두진 못했으나(트로피
측면에서 말이다.), 그래도 우승에 매우 근접했었다. 게다가 이 팀은
다른 리버풀 스쿼드가 가지고 있지 않은 것을 가지고 있다. 바로
루이스 수아레스.
수아레스의 전설적인 리버풀에서의 마지막 시즌은 역대 최고의
개별 퍼포먼스 가운데 하나로 남아있다. 리그에서 총 31골을
득점하면서 압도적인 득표율로 ‘POTY’를 수상함에 따라 대단한
기량을 펼쳤다는 사실을 인정받았다.
이러한 수아레스의 굉장한 활약상과 로저스 감독의 전술적 유연성이
결합된 당시 리버풀은, 리그에서 우승했어야 했다.
2014년 2월부터 4월까지 11연승을 거둔 리버풀은 24년만의 첫 1부
리그 우승이라는 영광에 정말 가까이 다가갔다. 맨시티와 프리미어리그
34라운드 안필드 홈경기서 아름다운 명승부 끝에 3:2 승리를 가져감에
따라 1위 경쟁에 한 걸음 다가간 리버풀 이였으니 말이다. 그렇기에
이후 발생한 상황들은 안타깝기 그지없었다.
첼시와의 리그 36라운드 홈경기에서 스티븐 제라드가 뎀바 바에게
머리를 읊조리는 가슴 미어지는 실수 끝에 0:2 패배를 당하고
말았고, 다음 팰리스와 셀허스트 파크 원정 경기에선 다 이기다
막판 3골을 내리 설점하며 3:3 무승부를 기록해 라이벌 팬들에게
‘크리스탄불의 기적’이라는 조롱을 듣고 말았다.
결국 무자비한 맨시티가 리그 마지막 경기를 승리로 장식하여
우승을 확정하고 말았다. 아유...
9위 : 1995/96시즌 리버풀
· 포메이션 : 5 - 3 - 2
GK - 데이비드 제임스
DF - 제이슨 맥아티어, 마크 라이트, 존 스케일스, 필 밥, 롭 존스
MF - 제이미 레드냅, 스티브 맥마나만, 존 반스
FW - 스탠 콜리모어, 로비 파울러
당시 감독 - 로이 에반스
성적
- 리그 : 3위
UEFA컵 : 32강
FA컵 : 준우승
리그 컵 : 16강
95/96시즌은 잉글랜드 축구의 새로운 문이 열리는 순간이었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가 알렉스 퍼거슨 감독의 지휘 아래 리그의
지배자로 자리 매김 했던 그 때, 전 시즌 리그 컵 우승을 차지한
리버풀이 다시금 우승 경쟁에 뛰어들 수 있는 재능 있는 클럽으로
성장했다는 걸 보여주는 시간이었다.
맨유와 리버풀에 케빈 키건의 뉴캐슬 역시 시즌을 힘차게 시작하며
치열한 3파전이 예상되었다. 그러나 이 중 전술적으로 가장 흥미를
자아낸 구단은 바로 리버풀.
로이 에반스 감독은 전술적 유연함의 측면에서 퍼거슨보다 더 나은
감독이었다. 시즌 초반 올드 트래포드 원정에서 맨유와 2:2로 비긴
리버풀은 12월 안필드에서 2:0 짜릿한 승리를 거두었고, 퍼거슨은
특히 맥마나만을 어떻게 막아내야 할지 당혹스러운 눈치였다.
맥마나만은 맨유와의 2경기에서 모두 파울러와 콜리모어 뒤에
배치되어 프리롤 역할을 맡아 굉장한 드리블 실력으로 맨유를
요리했다.
여기에 단단한 백 쓰리 수비진을 ‘패스 머신’ 제이미 레드냅과
베테랑 존 반스가 앞선에서 성실히 보호해주었다. 전성기 시절
화려한 윙어였던 반스는 이 시기 고참으로서 팀을 든든하게
지원해주던 때였다.
부상의 악령이 리버풀을 덮치기 전, 로비 파울러는 신이 내린
재능을 자랑하던 훌륭한 스트라이커였다. 파울러는 해당 시즌
리그에서 28골을 득점했고, 다른 컵 대회에선 8골을 추가로
득점했다.
그러나 역시 이번에도 리버풀은 1위 맨유와 2위 뉴캐슬에
밀린 3위로 리그를 마감한다. 게다가 FA컵 결승전에선
눈물의 0:1 패배까지 당했다.
여담으로 FA컵 결승전 당시 킥오프를 앞두고 웸블리에
입장하면서 리버풀 선수단이 입은 미색의 아르마니 수트는
이 클럽이 스타일리쉬함을 추구한다는 인상을 심어주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리버풀 팀엔 ‘스파이시 보이스’라는
꼬리표가 따라다니기 시작한다.
궁극적으로는 실망스러운 시즌이었지만, 그래도 다방면으로
엔터테이닝함을 보여주었던 시간이기도 하다.
8위 : 2004/05시즌 리버풀
· 포메이션 : 4 - 4 - 2
GK - 예지 두덱
DF - 스티브 피넌, 제이미 캐러거, 사미 히피아, 지미 트라오레
MF - 루이스 가르시아, 스티븐 제라드, 사비 알론소, 욘 아르네 리세
FW - 해리 키웰, 밀란 바로시
당시 감독 - 라파엘 베니테스
성적
- 리그 : 5위
챔피언스리그 : 우승
FA컵 : 64강
리그 컵 : 준우승
베니테스 감독이 지휘하던 04/05시즌 리버풀은 비록 리그에선
다소 아쉬웠을지 몰라도 컵 대회에서 만큼은 자신의 강팀 DNA를
숨길 수 없었다. 베니테스 감독의 첫 시즌 리버풀은 가장 큰 대회서
트로피를 들어 올린다.
컵 대회에서 리버풀의 굉장한 질주는 주로 베니테스 감독의
절정에 달한 전술적 통찰력에 기인했다. 대부분 약팀 보다
강팀을 상대로 더욱 효과적인 전술을 구사했었다.
발렌시아에서 화려한 성공을 거둔 감독에 입성한 뒤, 캐러거는
유틸리티한 자원에서 강력한 센터백으로 포지션을 굳혀갔고
라 리가에서 좋은 활약을 보여주던 미드필더 루이스 가르시아와
사비 알론소가 팀에 합류함에 따라 스쿼드가 더욱 깊어졌다.
그럼에도 이 팀의 핵심 원동력은 바로 클럽의 가장 위대한 주장 중
한 명이자 박스 투 박스 형 미드필더였던 스티븐 제라드. 제라드는
승부차기 까지 가는 접전 끝에 밀란을 물리친 ‘이스탄불의 기적’
결승에서 기억에 오래토록 자리할 퍼포먼스를 펼쳤다.
비록 리그 최종 순위가 5위였다는 사실에서 알 수 있듯 선수 개인의
면면만 보면 아주 대단하진 않았다. 그러나 이 당시 스쿼드는 필요할
때 강팀처럼 플레이하는 재주가 있었다.
7위 : 1963/64시즌 리버풀
· 포메이션 : 4 - 4 - 2
GK - 토미 로렌스
DF - 크리스 롤러, 게리 번, 론 예이츠, 토미 스미스
MF - 윌리 스티븐슨, 이안 캘라한, 피터 톰슨, 제프 스트롱
FW - 로저 헌트, 이안 세인트 존
당시 감독 - 빌 샹클리
성적
- 리그 : 1위
FA컵 : 8강
리버풀이 2부 리그 팀에서 1부 리그 챔피언으로 환골탈태하는 덴
한 인물의 공이 크다.
1963/64시즌 리버풀이 챔피언에 등극하기 5년 전, 당시만 해도
잘 알려지지 않았던 스코틀랜드인 감독은 허더스필드의 2부 리그
라이벌 리버풀로 자리를 옮겼다.
빌 샹클리 감독은 1947년 이후 1부 리그에서 우승을 하지 못한
팀에 가능성을 엿보았고, 곧 노령화된 스쿼드의 개편에 나선다.
드디어 1963년 여름, 모든 선수들이 한 자리에 모였다. 토미 로렌스,
론 예이츠, 이안 캘라한과 로저 헌트까지. 리버풀은 잉글랜드 최고의
척추 라인을 갖추게 되었다.
헌트가 29골을 득점하는 한편 당시 1부 리그 최다 기록인 92득점을
찍은 리버풀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제치고 우승을 차지했다.
바로 이 때가 리버풀의 위대한 시간의 시작이 되는 시점이고,
첫 황금기의 대부분을 샹클리 감독과 함께 할 것이다.
6위 : 2000/01시즌 리버풀
· 포메이션 : 4 - 4 - 2
GK - 산더 베스터벨트
DF - 마르쿠스 바벨, 스테판 앙쇼, 사미 히피아, 제이미 캐러거
MF - 스티븐 제라드, 디트마어 하만, 개리 맥칼리스터, 대니 머피
FW - 에밀 헤스키, 마이클 오웬
당시 감독 - 제라르 울리에
성적
- 리그 : 3위
UEFA컵 : 우승
FA컵 : 우승
리그 컵 : 우승
잉글랜드 축구 역사상 처음이자 유일하게 UEFA컵, FA컵, 리그 컵
싹쓸이를 기록했던 밸런스 좋은 스쿼드.
제라르 울리에 감독이 버티던 리버풀은 30대 중반의 플레이메이커
개리 멕칼리스터가 중원을 지키는 등 경험 많은 베테랑들이 팀의
중심을 잡아주는 한편 재능 넘치는 로컬 보이들이 다수 스쿼드에
포함된 팀이었다. 그런고로 리그에선 3위에 머물렀지만 컵 대회
에서만큼은 굉장한 위력을 발휘했다.
제이미 캐러거, 스티븐 제라드, 대니 머피, 로비 파울러, 마이클 오웬
모두 구단의 유소년 시스템에 의해 성장했고 개개인 전부 리버풀에
핵심 자원으로 자리 매김 했다.
이 중 가장 빛나던 선수는 바로 20대 초반의 오웬. 이 시즌 활약을
통해 2001년 말 발롱도르의 주인공으로 낙점된다. 오웬은 아스날과
FA컵 결승전에서 멀티골을 작렬해 2:1 승리를 이끌었고, 알라베스와
UEFA 결승전에서 역시 2골을 뽑아내 5:4 치열한 승리에 큰 도움이
되었다. 이후 오웬은 이 시절의 폼을 보여주지 못한다.
5위 : 1985/86시즌 리버풀
· 포메이션 : 4 - 4 - 2
GK - 브루스 그로블라어
DF - 스티브 니콜, 앨런 한센, 마크 로렌슨, 짐 베글린
MF - 크레이그 존스, 얀 묄뷔, 케빈 맥도날드, 로니 웰런
FW - 케니 달글리쉬, 이안 러쉬
당시 감독 - 케니 달글리쉬
성적
- 리그 : 1위
FA컵 : 우승
리그 컵 : 4강
‘킹’ 케니 달글리쉬가 감독을 겸임하고 있던 가운데, 리버풀은
2명의 핵심 선수의 마지막 시즌 리그와 FA컵 더블을 달성한다.
1명은 유벤투스로 떠나는 이안 러쉬(곧이어 다시 리버풀에 복귀),
그리고 나머지 1명은 QPR로 판매될 새미 리였다.
80년대 중반까지 머지사이드는 잉글랜드 축구 제 1의 성지였다.
마거릿 대처의 민영화 조치는 도시 수 천 명의 사람들의 직장을
빼앗아 갔지만, 리버풀과 에버튼은 당대 유럽 최강의 팀들이었다.
그러나 84/85시즌 말 발생한 ‘헤이젤 참사’로 잉글랜드 클럽들은
이후 유럽 클럽 대항전 대회 출전이 금지되고 말았다. 그러므로
이 두 팀은 더욱 자국 무대에 집중하게 된다.
리그에서 22골을 득점한 이안 러쉬에 리그 마지막 날 첼시 원정에서
달글리쉬의 활약을 통한 승리에 힘입어 에버튼은 2점 차로 따돌리고
리버풀이 리그 왕좌를 차지했다.
몇 주 뒤 머지사이드 라이벌은 웸블리에서 FA컵 트로피를 두고
다투게 되고, 에버튼의 리네커에게 전반 실점을 허용하지만
후반 러쉬의 멀티골과 존스톤의 추가 득점을 더해 3:1로 재차
승리를 가져간다.
이 시즌 주목할 만한 선수는 바로 20대 초반의 얀 묄뷔. 묄뷔는
스위퍼 포지션과 미드필더 포지션을 오가며 지능적인 플레이를
펼쳤다. 묄뷔의 캐주얼한 플레이 스타일과 감각적인 테크닉은
팬들의 눈을 곧바로 사로잡았고, 달글리쉬의 팀에서 귀중한
존재로 우뚝 섰다.
4위 : 1972/73시즌 리버풀
· 포메이션 : 4 - 4 - 3
GK - 레이 클레멘스
DF - 크리스 롤러, 래리 로이드, 토미 스미스, 알렉 린제이
MF - 엠린 휴스, 피터 코맥, 이안 캘라한
FW - 케빈 키건, 존 토샥, 스티브 헤이웨이
당시 감독 - 빌 샹클리
성적
- 리그 : 1위
UEFA컵 : 우승
FA컵 : 32강
리그 컵 : 8강
이제 1960년대 초반의 영광스러운 기억은 먼 옛날이 되었다.
샹클리는 잉글랜드 축구판에 강력한 리버풀을 재건하기 위해
필사적이었다. 구단이 가장 최근 쌓은 업적을 돌아보려면 66년
으로 되돌아가야 하는데, 이는 1부 리그에서 우승한 마지막
해였다.
젊은 골키퍼였던 레이 클레멘스와 20대 초반의 재능 있는 공격수
케빈 키건이 팀의 주축으로 새롭게 자리 했다. 하지만 진정으로
영향력 있던 선수는 1972년 노팅엄 포레스트에서 리버풀로 건너
온 피터 코맥.
코맥은 투지 넘치던 플레이메이커였는데, 상대 선수들에게 태클을
날리는 것만큼이나 자신의 마크맨에게 타격을 가할 때 행복을 느꼈다.
코맥의 합류로 리버풀은 아스날을 3점 차로 따돌리고 다시 1부 리그의
지배자로 올라선다.
UEFA컵에선 묀헨글라트바흐를 4강에서 만나 총 합계 3:2로 꺾고
결승전에 진출했다. 1차전이 비로 인해 27분 만에 마무리 되면서
샹클리 감독은 더욱 면밀히 상대팀의 약점을 파악할 수 있었다.
샹클리 감독은 글라트바흐의 에이스, 귄터 네처가 공중볼에 약하다는
사실을 알아차렸고 브라이언 홀 대신 터프한 존 토샥을 선발로 내세워
전열을 가다듬었다. 결국 이 선택이 트로피를 안겨주는 중요한 차이를
만들었다.
리버풀에서 샹클리가 빛을 뿜어내던 마지막 시즌.
3위 : 2018/19시즌 ~ 현재 리버풀
· 포메이션 : 4 - 3 - 3
GK - 알리송 베커
DF - 트렌트 알렉산더-아놀드, 조엘 마팁, 버질 반 다이크, 앤드류 로버트슨
MF - 조던 헨더슨, 파비뉴, 조르지뇨 베이날둠
FW - 모하메드 살라, 호베르투 피르미누, 사디오 마네
당시 감독 - 위르겐 클롭
성적
- 리그 : 2위 (18/19시즌), 1위 (19/20시즌)
챔피언스리그 : 우승 (18/19시즌), 16강 (19/20시즌)
FA컵 : 64강 (18/19시즌), 16강 (19/20시즌)
리그 컵 : 32강 (18/19시즌), 8강 (19/20시즌)
UEFA 슈퍼 컵 : X (18/19시즌), 우승 (19/20시즌)
FIFA 클럽 월드컵 : X (18/19시즌), 우승 (19/20시즌)
일정 기간 이후에도 큰 변화 없이 선발 라인업을 고수하는 팀은
드물다. 하지만 현재 리버풀은 예외.
17/18시즌 챔피언스리그 결승에서 패배한 이후 믿음직스럽지 못한
카리우스를 팔고 알리송 베커를 영입한 리버풀. 그 이후로 부상이나
징계와 같은 특별한 상황이 아니라면 베스트 XI는 고정되어 왔다.
위르겐 클롭 감독이 선사하는 숨 막히는 ‘게겐 프레싱’ 압박은
볼 소유권을 내줬을 시 전체 선수단의 활동량과 체력에 기반 한다.
그리고 소유권을 다시 되찾으면 상대 진영을 교란시키는 킬러
본능을 발휘한다. 모하메드 살라와 호베르투 피르미누, 그리고
사디오 마네 일명 ‘마·누·라’ 라인을 갖춘 리버풀은 유럽 최고의
최전방 트리오를 구축할 수 있었다.
18/19시즌 EPL에선 아쉽게 우승을 놓치나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선
토트넘을 상대로 기분 좋은 승리로 이를 보상받았다. 이 시즌 리버풀은
리그 승점 97점을 달성했고, 이는 해당 시즌까지 119시즌 중 116시즌
에서 1위를 차지할 수 있는 수치였다. 하지만 라이벌 맨체스터 시티에
1점차로 뒤처지며 우승을 다음으로 기약해야 했다.
그래도 지난 시즌 리버풀은 99점을 획득해 30년 만의 첫 1부 리그
우승이라는 명예를 얻었다. 앞으로 더 많은 트로피들이 뒤따를 것이
확실하다.
2위 : 1976/77시즌 리버풀
· 포메이션 : 4 - 4 - 2
GK - 레이 클레멘스
DF - 필 닐, 토미 스미스, 엠린 휴스, 조이 존스
MF - 이안 캘라한, 지미 케이스, 테리 맥더모트, 레이 케네디
FW - 케빈 키건, 스티브 헤이웨이
당시 감독 - 밥 페이즐리
성적
- 리그 : 1위
유러피언 컵 : 우승
FA컵 : 준우승
리그 컵 : 64강
FA 체리티 쉴드 : 우승
밥 페이즐리의 두 번째 시즌에도 리그 우승을 차지하긴 했지만,
샹클리의 후계자이자 전 수석 코치였던 페이즐리의 리버풀이
진정 성공을 거둔 시즌은 바로 세 번째 시즌.
만약 FA컵 결승전에서 이겼더라면 1999년 맨유보다 22년 먼저
트레블을 달성할 수도 있었다. 비록 웸블리에선 1:2로 패했으나
4윌 뒤 로마에서 더블을 작성하게 된다.
유러피언 컵 결승에서 몇 년 전 상대한 묀헨글라트바흐를 재차
만나 3:1로 제압하고 트로피를 들어 올렸다. 이 때 우승은 구단
역대 유러피언/챔스 우승 6회 중 첫 번째 순간.
이 우승은 케빈 키건이 리버풀에서 경험한 마지막 영광으로,
몇 주 뒤 5만 파운드의 이적료를 통해 함부르크로 떠난다.
하지만 페이즐리는 파틱 시슬 FC에서 센터백 앨런 한센을
영입하며 조용히 스쿼드 보강을 진행했다.
1시즌 뒤 리그에선 험난한 길을 걷지만 유러피언 컵에선
2회 연속 왕관을 쓸 수 있었다.
1위 : 1983/84시즌 리버풀
· 포메이션 : 4 - 4 - 2
GK - 브루스 그로블라어
DF - 필 닐, 마크 로렌슨, 앨런 한센, 앨런 케네디
MF - 크레이그 존스톤, 새미 리, 그레이엄 수네스, 로니 웰런
FW - 케니 달글리쉬, 이안 러쉬
당시 감독 - 조 페이건
성적
- 리그 : 1위
유러피언 컵 : 우승
FA컵 : 32강
리그 컵 : 우승
리버풀 역대 최고의 스쿼드는 구단의 레전드 밥 페이즐리 감독의
임기가 끝나자마자 곧바로 찾아왔다.
페이즐리의 후임이라는 엄청난 부담감을 짊어진 이는 조 페이건.
이 시즌은 바로 조 페이건의 부임 첫 시즌이었다. 이 때 리버풀은
리그와 유러피언 컵, 리그 컵을 정복하며 더할 나위 없이 완벽히
새로운 세대를 맞이하게 된다.
브루스 그로블라어는 잉글랜드 축구 역사상 가장 뛰어난 안정감을
자랑하던 수문장 가운데 한 명. 여기에 수비 라인은 우아함과
단단함이 완벽하게 조화를 이루었다. 1981년 브라이튼에서 리버풀에
합류한 뒤 뛰어난 실력을 보여준 센터백 마크 로렌슨도 있지만,
포 백 라인의 컨트롤 타워는 우아하고 명석한 앨런 한센이었다.
미드필더 진에는 삼프도리아에 합류하기 전 마지막 시즌 불꽃을
태운 그레이엄 수네스에 왕성한 활동량을 자랑하던 크레이그
존스톤이 중원에 에너지를 불어 넣었다. 새미 리와 로니 웰런도
양 측면에서 열심히 공격을 지원했다.
그리고, 진정으로 환한 공격진이 있었다. 달글리쉬의 지원 아래
이안 러쉬는 본인 커리어 최고의 시즌을 맞이했다. 러쉬는 모든
대회를 통틀어 47골을 몰아쳤고, 이 중 32골은 리그에서 8골은
리그 컵에서 득점하였다.
리버풀의 놀라운 트레블은 로마에서 열린 유러피언 컵 결승에서
AS 로마를 상대로 승부차기 까지 혈투 끝에 꺾으며 완성되었다.
해당 시즌 리버풀은 진정 위대한 업적을 이룩한 세계적 수준의
팀이었다. 이들과 함께라면, 어떠한 폭풍 속에서도 걸어 나갈 수
있었다(Together, there was no storm through which they
couldn't walk.).
출처:https://www.fourfourtwo.com/features/ranked-the-10-best-liverpool-teams-ever
10위 : 2013/14시즌 리버풀
· 포메이션 : 4 - 3 - 3
GK - 시몽 미뇰레
DF - 글렌 존슨, 마틴 스크르텔, 마마두 사코, 존 플라나간
MF - 조던 헨더슨, 스티븐 제라드, 필리페 쿠티뉴
FW - 다니엘 스터리지, 루이스 수아레스, 라힘 스털링
당시 감독 - 브랜든 로저스
성적
- 리그 : 2위
FA컵 : 16강
리그 컵 : 32강
“우린 이 기회를 놓치면 안 돼!”(“We don’t let this slip!”).
그러나 결국 그들은 미끄러지고 말았다.
브랜든 로저스 감독이 이끌었던 13/14시즌 리버풀은 이 리스트에
있는 여타 팀들에 비해 괄목할 만한 성적을 거두진 못했으나(트로피
측면에서 말이다.), 그래도 우승에 매우 근접했었다. 게다가 이 팀은
다른 리버풀 스쿼드가 가지고 있지 않은 것을 가지고 있다. 바로
루이스 수아레스.
수아레스의 전설적인 리버풀에서의 마지막 시즌은 역대 최고의
개별 퍼포먼스 가운데 하나로 남아있다. 리그에서 총 31골을
득점하면서 압도적인 득표율로 ‘POTY’를 수상함에 따라 대단한
기량을 펼쳤다는 사실을 인정받았다.
이러한 수아레스의 굉장한 활약상과 로저스 감독의 전술적 유연성이
결합된 당시 리버풀은, 리그에서 우승했어야 했다.
2014년 2월부터 4월까지 11연승을 거둔 리버풀은 24년만의 첫 1부
리그 우승이라는 영광에 정말 가까이 다가갔다. 맨시티와 프리미어리그
34라운드 안필드 홈경기서 아름다운 명승부 끝에 3:2 승리를 가져감에
따라 1위 경쟁에 한 걸음 다가간 리버풀 이였으니 말이다. 그렇기에
이후 발생한 상황들은 안타깝기 그지없었다.
첼시와의 리그 36라운드 홈경기에서 스티븐 제라드가 뎀바 바에게
머리를 읊조리는 가슴 미어지는 실수 끝에 0:2 패배를 당하고
말았고, 다음 팰리스와 셀허스트 파크 원정 경기에선 다 이기다
막판 3골을 내리 설점하며 3:3 무승부를 기록해 라이벌 팬들에게
‘크리스탄불의 기적’이라는 조롱을 듣고 말았다.
결국 무자비한 맨시티가 리그 마지막 경기를 승리로 장식하여
우승을 확정하고 말았다. 아유...
9위 : 1995/96시즌 리버풀
· 포메이션 : 5 - 3 - 2
GK - 데이비드 제임스
DF - 제이슨 맥아티어, 마크 라이트, 존 스케일스, 필 밥, 롭 존스
MF - 제이미 레드냅, 스티브 맥마나만, 존 반스
FW - 스탠 콜리모어, 로비 파울러
당시 감독 - 로이 에반스
성적
- 리그 : 3위
UEFA컵 : 32강
FA컵 : 준우승
리그 컵 : 16강
95/96시즌은 잉글랜드 축구의 새로운 문이 열리는 순간이었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가 알렉스 퍼거슨 감독의 지휘 아래 리그의
지배자로 자리 매김 했던 그 때, 전 시즌 리그 컵 우승을 차지한
리버풀이 다시금 우승 경쟁에 뛰어들 수 있는 재능 있는 클럽으로
성장했다는 걸 보여주는 시간이었다.
맨유와 리버풀에 케빈 키건의 뉴캐슬 역시 시즌을 힘차게 시작하며
치열한 3파전이 예상되었다. 그러나 이 중 전술적으로 가장 흥미를
자아낸 구단은 바로 리버풀.
로이 에반스 감독은 전술적 유연함의 측면에서 퍼거슨보다 더 나은
감독이었다. 시즌 초반 올드 트래포드 원정에서 맨유와 2:2로 비긴
리버풀은 12월 안필드에서 2:0 짜릿한 승리를 거두었고, 퍼거슨은
특히 맥마나만을 어떻게 막아내야 할지 당혹스러운 눈치였다.
맥마나만은 맨유와의 2경기에서 모두 파울러와 콜리모어 뒤에
배치되어 프리롤 역할을 맡아 굉장한 드리블 실력으로 맨유를
요리했다.
여기에 단단한 백 쓰리 수비진을 ‘패스 머신’ 제이미 레드냅과
베테랑 존 반스가 앞선에서 성실히 보호해주었다. 전성기 시절
화려한 윙어였던 반스는 이 시기 고참으로서 팀을 든든하게
지원해주던 때였다.
부상의 악령이 리버풀을 덮치기 전, 로비 파울러는 신이 내린
재능을 자랑하던 훌륭한 스트라이커였다. 파울러는 해당 시즌
리그에서 28골을 득점했고, 다른 컵 대회에선 8골을 추가로
득점했다.
그러나 역시 이번에도 리버풀은 1위 맨유와 2위 뉴캐슬에
밀린 3위로 리그를 마감한다. 게다가 FA컵 결승전에선
눈물의 0:1 패배까지 당했다.
여담으로 FA컵 결승전 당시 킥오프를 앞두고 웸블리에
입장하면서 리버풀 선수단이 입은 미색의 아르마니 수트는
이 클럽이 스타일리쉬함을 추구한다는 인상을 심어주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리버풀 팀엔 ‘스파이시 보이스’라는
꼬리표가 따라다니기 시작한다.
궁극적으로는 실망스러운 시즌이었지만, 그래도 다방면으로
엔터테이닝함을 보여주었던 시간이기도 하다.
8위 : 2004/05시즌 리버풀
· 포메이션 : 4 - 4 - 2
GK - 예지 두덱
DF - 스티브 피넌, 제이미 캐러거, 사미 히피아, 지미 트라오레
MF - 루이스 가르시아, 스티븐 제라드, 사비 알론소, 욘 아르네 리세
FW - 해리 키웰, 밀란 바로시
당시 감독 - 라파엘 베니테스
성적
- 리그 : 5위
챔피언스리그 : 우승
FA컵 : 64강
리그 컵 : 준우승
베니테스 감독이 지휘하던 04/05시즌 리버풀은 비록 리그에선
다소 아쉬웠을지 몰라도 컵 대회에서 만큼은 자신의 강팀 DNA를
숨길 수 없었다. 베니테스 감독의 첫 시즌 리버풀은 가장 큰 대회서
트로피를 들어 올린다.
컵 대회에서 리버풀의 굉장한 질주는 주로 베니테스 감독의
절정에 달한 전술적 통찰력에 기인했다. 대부분 약팀 보다
강팀을 상대로 더욱 효과적인 전술을 구사했었다.
발렌시아에서 화려한 성공을 거둔 감독에 입성한 뒤, 캐러거는
유틸리티한 자원에서 강력한 센터백으로 포지션을 굳혀갔고
라 리가에서 좋은 활약을 보여주던 미드필더 루이스 가르시아와
사비 알론소가 팀에 합류함에 따라 스쿼드가 더욱 깊어졌다.
그럼에도 이 팀의 핵심 원동력은 바로 클럽의 가장 위대한 주장 중
한 명이자 박스 투 박스 형 미드필더였던 스티븐 제라드. 제라드는
승부차기 까지 가는 접전 끝에 밀란을 물리친 ‘이스탄불의 기적’
결승에서 기억에 오래토록 자리할 퍼포먼스를 펼쳤다.
비록 리그 최종 순위가 5위였다는 사실에서 알 수 있듯 선수 개인의
면면만 보면 아주 대단하진 않았다. 그러나 이 당시 스쿼드는 필요할
때 강팀처럼 플레이하는 재주가 있었다.
7위 : 1963/64시즌 리버풀
· 포메이션 : 4 - 4 - 2
GK - 토미 로렌스
DF - 크리스 롤러, 게리 번, 론 예이츠, 토미 스미스
MF - 윌리 스티븐슨, 이안 캘라한, 피터 톰슨, 제프 스트롱
FW - 로저 헌트, 이안 세인트 존
당시 감독 - 빌 샹클리
성적
- 리그 : 1위
FA컵 : 8강
리버풀이 2부 리그 팀에서 1부 리그 챔피언으로 환골탈태하는 덴
한 인물의 공이 크다.
1963/64시즌 리버풀이 챔피언에 등극하기 5년 전, 당시만 해도
잘 알려지지 않았던 스코틀랜드인 감독은 허더스필드의 2부 리그
라이벌 리버풀로 자리를 옮겼다.
빌 샹클리 감독은 1947년 이후 1부 리그에서 우승을 하지 못한
팀에 가능성을 엿보았고, 곧 노령화된 스쿼드의 개편에 나선다.
드디어 1963년 여름, 모든 선수들이 한 자리에 모였다. 토미 로렌스,
론 예이츠, 이안 캘라한과 로저 헌트까지. 리버풀은 잉글랜드 최고의
척추 라인을 갖추게 되었다.
헌트가 29골을 득점하는 한편 당시 1부 리그 최다 기록인 92득점을
찍은 리버풀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제치고 우승을 차지했다.
바로 이 때가 리버풀의 위대한 시간의 시작이 되는 시점이고,
첫 황금기의 대부분을 샹클리 감독과 함께 할 것이다.
6위 : 2000/01시즌 리버풀
· 포메이션 : 4 - 4 - 2
GK - 산더 베스터벨트
DF - 마르쿠스 바벨, 스테판 앙쇼, 사미 히피아, 제이미 캐러거
MF - 스티븐 제라드, 디트마어 하만, 개리 맥칼리스터, 대니 머피
FW - 에밀 헤스키, 마이클 오웬
당시 감독 - 제라르 울리에
성적
- 리그 : 3위
UEFA컵 : 우승
FA컵 : 우승
리그 컵 : 우승
잉글랜드 축구 역사상 처음이자 유일하게 UEFA컵, FA컵, 리그 컵
싹쓸이를 기록했던 밸런스 좋은 스쿼드.
제라르 울리에 감독이 버티던 리버풀은 30대 중반의 플레이메이커
개리 멕칼리스터가 중원을 지키는 등 경험 많은 베테랑들이 팀의
중심을 잡아주는 한편 재능 넘치는 로컬 보이들이 다수 스쿼드에
포함된 팀이었다. 그런고로 리그에선 3위에 머물렀지만 컵 대회
에서만큼은 굉장한 위력을 발휘했다.
제이미 캐러거, 스티븐 제라드, 대니 머피, 로비 파울러, 마이클 오웬
모두 구단의 유소년 시스템에 의해 성장했고 개개인 전부 리버풀에
핵심 자원으로 자리 매김 했다.
이 중 가장 빛나던 선수는 바로 20대 초반의 오웬. 이 시즌 활약을
통해 2001년 말 발롱도르의 주인공으로 낙점된다. 오웬은 아스날과
FA컵 결승전에서 멀티골을 작렬해 2:1 승리를 이끌었고, 알라베스와
UEFA 결승전에서 역시 2골을 뽑아내 5:4 치열한 승리에 큰 도움이
되었다. 이후 오웬은 이 시절의 폼을 보여주지 못한다.
5위 : 1985/86시즌 리버풀
· 포메이션 : 4 - 4 - 2
GK - 브루스 그로블라어
DF - 스티브 니콜, 앨런 한센, 마크 로렌슨, 짐 베글린
MF - 크레이그 존스, 얀 묄뷔, 케빈 맥도날드, 로니 웰런
FW - 케니 달글리쉬, 이안 러쉬
당시 감독 - 케니 달글리쉬
성적
- 리그 : 1위
FA컵 : 우승
리그 컵 : 4강
‘킹’ 케니 달글리쉬가 감독을 겸임하고 있던 가운데, 리버풀은
2명의 핵심 선수의 마지막 시즌 리그와 FA컵 더블을 달성한다.
1명은 유벤투스로 떠나는 이안 러쉬(곧이어 다시 리버풀에 복귀),
그리고 나머지 1명은 QPR로 판매될 새미 리였다.
80년대 중반까지 머지사이드는 잉글랜드 축구 제 1의 성지였다.
마거릿 대처의 민영화 조치는 도시 수 천 명의 사람들의 직장을
빼앗아 갔지만, 리버풀과 에버튼은 당대 유럽 최강의 팀들이었다.
그러나 84/85시즌 말 발생한 ‘헤이젤 참사’로 잉글랜드 클럽들은
이후 유럽 클럽 대항전 대회 출전이 금지되고 말았다. 그러므로
이 두 팀은 더욱 자국 무대에 집중하게 된다.
리그에서 22골을 득점한 이안 러쉬에 리그 마지막 날 첼시 원정에서
달글리쉬의 활약을 통한 승리에 힘입어 에버튼은 2점 차로 따돌리고
리버풀이 리그 왕좌를 차지했다.
몇 주 뒤 머지사이드 라이벌은 웸블리에서 FA컵 트로피를 두고
다투게 되고, 에버튼의 리네커에게 전반 실점을 허용하지만
후반 러쉬의 멀티골과 존스톤의 추가 득점을 더해 3:1로 재차
승리를 가져간다.
이 시즌 주목할 만한 선수는 바로 20대 초반의 얀 묄뷔. 묄뷔는
스위퍼 포지션과 미드필더 포지션을 오가며 지능적인 플레이를
펼쳤다. 묄뷔의 캐주얼한 플레이 스타일과 감각적인 테크닉은
팬들의 눈을 곧바로 사로잡았고, 달글리쉬의 팀에서 귀중한
존재로 우뚝 섰다.
4위 : 1972/73시즌 리버풀
· 포메이션 : 4 - 4 - 3
GK - 레이 클레멘스
DF - 크리스 롤러, 래리 로이드, 토미 스미스, 알렉 린제이
MF - 엠린 휴스, 피터 코맥, 이안 캘라한
FW - 케빈 키건, 존 토샥, 스티브 헤이웨이
당시 감독 - 빌 샹클리
성적
- 리그 : 1위
UEFA컵 : 우승
FA컵 : 32강
리그 컵 : 8강
이제 1960년대 초반의 영광스러운 기억은 먼 옛날이 되었다.
샹클리는 잉글랜드 축구판에 강력한 리버풀을 재건하기 위해
필사적이었다. 구단이 가장 최근 쌓은 업적을 돌아보려면 66년
으로 되돌아가야 하는데, 이는 1부 리그에서 우승한 마지막
해였다.
젊은 골키퍼였던 레이 클레멘스와 20대 초반의 재능 있는 공격수
케빈 키건이 팀의 주축으로 새롭게 자리 했다. 하지만 진정으로
영향력 있던 선수는 1972년 노팅엄 포레스트에서 리버풀로 건너
온 피터 코맥.
코맥은 투지 넘치던 플레이메이커였는데, 상대 선수들에게 태클을
날리는 것만큼이나 자신의 마크맨에게 타격을 가할 때 행복을 느꼈다.
코맥의 합류로 리버풀은 아스날을 3점 차로 따돌리고 다시 1부 리그의
지배자로 올라선다.
UEFA컵에선 묀헨글라트바흐를 4강에서 만나 총 합계 3:2로 꺾고
결승전에 진출했다. 1차전이 비로 인해 27분 만에 마무리 되면서
샹클리 감독은 더욱 면밀히 상대팀의 약점을 파악할 수 있었다.
샹클리 감독은 글라트바흐의 에이스, 귄터 네처가 공중볼에 약하다는
사실을 알아차렸고 브라이언 홀 대신 터프한 존 토샥을 선발로 내세워
전열을 가다듬었다. 결국 이 선택이 트로피를 안겨주는 중요한 차이를
만들었다.
리버풀에서 샹클리가 빛을 뿜어내던 마지막 시즌.
3위 : 2018/19시즌 ~ 현재 리버풀
· 포메이션 : 4 - 3 - 3
GK - 알리송 베커
DF - 트렌트 알렉산더-아놀드, 조엘 마팁, 버질 반 다이크, 앤드류 로버트슨
MF - 조던 헨더슨, 파비뉴, 조르지뇨 베이날둠
FW - 모하메드 살라, 호베르투 피르미누, 사디오 마네
당시 감독 - 위르겐 클롭
성적
- 리그 : 2위 (18/19시즌), 1위 (19/20시즌)
챔피언스리그 : 우승 (18/19시즌), 16강 (19/20시즌)
FA컵 : 64강 (18/19시즌), 16강 (19/20시즌)
리그 컵 : 32강 (18/19시즌), 8강 (19/20시즌)
UEFA 슈퍼 컵 : X (18/19시즌), 우승 (19/20시즌)
FIFA 클럽 월드컵 : X (18/19시즌), 우승 (19/20시즌)
일정 기간 이후에도 큰 변화 없이 선발 라인업을 고수하는 팀은
드물다. 하지만 현재 리버풀은 예외.
17/18시즌 챔피언스리그 결승에서 패배한 이후 믿음직스럽지 못한
카리우스를 팔고 알리송 베커를 영입한 리버풀. 그 이후로 부상이나
징계와 같은 특별한 상황이 아니라면 베스트 XI는 고정되어 왔다.
위르겐 클롭 감독이 선사하는 숨 막히는 ‘게겐 프레싱’ 압박은
볼 소유권을 내줬을 시 전체 선수단의 활동량과 체력에 기반 한다.
그리고 소유권을 다시 되찾으면 상대 진영을 교란시키는 킬러
본능을 발휘한다. 모하메드 살라와 호베르투 피르미누, 그리고
사디오 마네 일명 ‘마·누·라’ 라인을 갖춘 리버풀은 유럽 최고의
최전방 트리오를 구축할 수 있었다.
18/19시즌 EPL에선 아쉽게 우승을 놓치나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선
토트넘을 상대로 기분 좋은 승리로 이를 보상받았다. 이 시즌 리버풀은
리그 승점 97점을 달성했고, 이는 해당 시즌까지 119시즌 중 116시즌
에서 1위를 차지할 수 있는 수치였다. 하지만 라이벌 맨체스터 시티에
1점차로 뒤처지며 우승을 다음으로 기약해야 했다.
그래도 지난 시즌 리버풀은 99점을 획득해 30년 만의 첫 1부 리그
우승이라는 명예를 얻었다. 앞으로 더 많은 트로피들이 뒤따를 것이
확실하다.
2위 : 1976/77시즌 리버풀
· 포메이션 : 4 - 4 - 2
GK - 레이 클레멘스
DF - 필 닐, 토미 스미스, 엠린 휴스, 조이 존스
MF - 이안 캘라한, 지미 케이스, 테리 맥더모트, 레이 케네디
FW - 케빈 키건, 스티브 헤이웨이
당시 감독 - 밥 페이즐리
성적
- 리그 : 1위
유러피언 컵 : 우승
FA컵 : 준우승
리그 컵 : 64강
FA 체리티 쉴드 : 우승
밥 페이즐리의 두 번째 시즌에도 리그 우승을 차지하긴 했지만,
샹클리의 후계자이자 전 수석 코치였던 페이즐리의 리버풀이
진정 성공을 거둔 시즌은 바로 세 번째 시즌.
만약 FA컵 결승전에서 이겼더라면 1999년 맨유보다 22년 먼저
트레블을 달성할 수도 있었다. 비록 웸블리에선 1:2로 패했으나
4윌 뒤 로마에서 더블을 작성하게 된다.
유러피언 컵 결승에서 몇 년 전 상대한 묀헨글라트바흐를 재차
만나 3:1로 제압하고 트로피를 들어 올렸다. 이 때 우승은 구단
역대 유러피언/챔스 우승 6회 중 첫 번째 순간.
이 우승은 케빈 키건이 리버풀에서 경험한 마지막 영광으로,
몇 주 뒤 5만 파운드의 이적료를 통해 함부르크로 떠난다.
하지만 페이즐리는 파틱 시슬 FC에서 센터백 앨런 한센을
영입하며 조용히 스쿼드 보강을 진행했다.
1시즌 뒤 리그에선 험난한 길을 걷지만 유러피언 컵에선
2회 연속 왕관을 쓸 수 있었다.
1위 : 1983/84시즌 리버풀
· 포메이션 : 4 - 4 - 2
GK - 브루스 그로블라어
DF - 필 닐, 마크 로렌슨, 앨런 한센, 앨런 케네디
MF - 크레이그 존스톤, 새미 리, 그레이엄 수네스, 로니 웰런
FW - 케니 달글리쉬, 이안 러쉬
당시 감독 - 조 페이건
성적
- 리그 : 1위
유러피언 컵 : 우승
FA컵 : 32강
리그 컵 : 우승
리버풀 역대 최고의 스쿼드는 구단의 레전드 밥 페이즐리 감독의
임기가 끝나자마자 곧바로 찾아왔다.
페이즐리의 후임이라는 엄청난 부담감을 짊어진 이는 조 페이건.
이 시즌은 바로 조 페이건의 부임 첫 시즌이었다. 이 때 리버풀은
리그와 유러피언 컵, 리그 컵을 정복하며 더할 나위 없이 완벽히
새로운 세대를 맞이하게 된다.
브루스 그로블라어는 잉글랜드 축구 역사상 가장 뛰어난 안정감을
자랑하던 수문장 가운데 한 명. 여기에 수비 라인은 우아함과
단단함이 완벽하게 조화를 이루었다. 1981년 브라이튼에서 리버풀에
합류한 뒤 뛰어난 실력을 보여준 센터백 마크 로렌슨도 있지만,
포 백 라인의 컨트롤 타워는 우아하고 명석한 앨런 한센이었다.
미드필더 진에는 삼프도리아에 합류하기 전 마지막 시즌 불꽃을
태운 그레이엄 수네스에 왕성한 활동량을 자랑하던 크레이그
존스톤이 중원에 에너지를 불어 넣었다. 새미 리와 로니 웰런도
양 측면에서 열심히 공격을 지원했다.
그리고, 진정으로 환한 공격진이 있었다. 달글리쉬의 지원 아래
이안 러쉬는 본인 커리어 최고의 시즌을 맞이했다. 러쉬는 모든
대회를 통틀어 47골을 몰아쳤고, 이 중 32골은 리그에서 8골은
리그 컵에서 득점하였다.
리버풀의 놀라운 트레블은 로마에서 열린 유러피언 컵 결승에서
AS 로마를 상대로 승부차기 까지 혈투 끝에 꺾으며 완성되었다.
해당 시즌 리버풀은 진정 위대한 업적을 이룩한 세계적 수준의
팀이었다. 이들과 함께라면, 어떠한 폭풍 속에서도 걸어 나갈 수
있었다(Together, there was no storm through which they
couldn't walk.).
출처:https://www.fourfourtwo.com/features/ranked-the-10-best-liverpool-teams-ev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