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위 : 오카자키 신지
생년월일 - 1986년 4월 16일
국적 - 일본
주 포지션 - 처진 공격수
주요 소속팀 - 레스터 시티 FC
프리미어리그 우승을 경험한 단 2명의 일본인 선수 중 한 명.
오카자키 신지는 그 유명한 15/16시즌 레스터의 동화 같은
우승의 일원이었다.
특히 당시 뉴캐슬 전에서 그림 같은 오버헤드 킥을 작렬,
구단이 우승에 한 걸음 더 가까이 다가가는 계기를 마련했다.
여기에 A매치 현재 119경기 50득점을 기록하고 있는 신지는
일본 역대 A매치 최다 득점 3위, 최다 출전 4위에 올라있다.
19위 : 사이드 알-오와이란
생년월일 - 1967년 8월 19일
국적 - 사우디아라비아
주 포지션 - 공격형 미드필더
주요 소속팀 - 알 샤바브 FC
알-오와이란은 사우디아라비아 축구
역사상 최고의 순간을 장식한 바 있다.
그건 바로 1994년 미국 월드컵 조별 예선 벨기에 전.
전반 5분 알-오와이란이 엄청난 드리블을 선보이며 결승골을
득점했고, 이로 인해 사우디아라비아는 역사상 최초이자 최후의
월드컵 토너먼트 라운드 진출이라는 성적을 달성할 수 있었다.
특히 이 득점은 마라도나를 연상케 하는, 사우디아라비아를
넘어 월드컵 역대 상징적인 장면 중 하나이기도 하다.
다재다능한 공격형 미드필더였던 알-오와이란은 또한 리그에서도
뛰어난 활약을 남겼다. 소속팀 알 샤바브에서 통산 588경기에
출전해 238골을 기록한 알-오와이란은 구단에 큰 힘이 되었다.
18위 : 미우라 카즈요시
생년월일 - 1967년 2월 26일
국적 - 일본
주 포지션 - 스트라이커
주요 소속팀 - 베르디 가와사키
미우라 카즈요시는 현재 선수 생활을 하고 있는 골잡이 가운데
가장 고령이자, 54살이라는 나이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J1 리그
소속 요코하마 FC에서 강렬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카즈요시의 롱런에만 초점을 맞추는 시선은 자칫
전성기 시절 카즈요시의 기량을 간과하게 만들 수도 있다.
1992년 아시아 올해의 선수상을 수상하는 카즈요시는 1982년
브라질로 축구 유학을 떠난 뒤 브라질 리그에서 커리어 초반을
보냈고, 그 곳에서 뛰어난 기술적 기량과 스피드, 그리고 타고난
볼 컨트롤을 바탕으로 다득점을 양산했다.
카즈요시는 A매치 통산 89경기 출전에 55골을 득점하여
일본 역대 A매치 최다 득점 부분 2위에 올라있다.
17위 : 마제드 압둘라
생년월일 - 1959년 11월 1일
국적 - 사우디아라비아
주 포지션 - 처진 공격수
주요 소속팀 - 알-나스르 FC
마제드 압둘라는 알-나스트에서만 21년을 보낸 원 클럽 맨.
하지만 압둘라가 국제적인 명성을 얻은 무대는 바로 국가 대항전.
사우디아라비아 대표팀에서 117경기 출전, 72골을 득점해 조국의
통산 A매치 최다 득점자 1위에 등극했다.
특히 1984년과 1988년 두 대회 연속 진출한 아시안 컵 결승전에서
2경기 합쳐 3골을 득점해 사우디아라비아의 아시안 컵 연속 우승에
큰 보탬이 되기도 했다.
16위 : 가마모토 구니시게
생년월일 - 1944년 4월 15일
국적 - 일본
주 포지션 - 스트라이커
주요 소속팀 - 얀마 디젤
가마모토 구니시게는 선수 생활을 오직 얀마 디젤에서만 보내며,
251경기 출전에 202득점이라는 대단한 기록을 남기고 떠났다.
마찬가지로 A매치 76경기 75득점이라는 가공할만한 득점력을
보여준 구니시게는 현 일본 역대 A매치 최다 득점자이다.
1968년 멕시코시티 올림픽에 출전한 구니시게는 대회 통틀어
7골을 득점, 대회 득점왕을 차지함과 동시에 동메달을 목에 건다.
15위 : 유니스 마무드
생년월일 - 1983년 2월 3일
국적 - 이라크
주 포지션 - 스트라이커
주요 소속팀 - 알-가라파 SC
유니스 마무드는 조국 이라크 축구 역사의 기념비적인 순간을
장식해 이라크의 축구 영웅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2004년 아테네 올림픽에 출전한 이라크는 당시 조별 예선에서
포르투갈을, 그리고 8강 전에선 호주를 잡아 4강에 진출한다.
당시 스쿼드의 한 자리를 차지한 선수가 바로 마무드.
그리고 바로 2007년 아시안 컵 결승, 마무드가 헤딩골로
골망을 가른 끝에 이라크가 감격적인 우승을 차지하게 되고,
마무드는 눈부신 활약으로 자국에 희망을 선사했다.
A매치 148경기 출전에 57득점이라는 수치를 기록한 마무드는
이라크 역대 A매치 최다 출전 1위와 최다 득점 2위에 올라있다.
14위 : 자바드 네쿠남
생년월일 - 1980년 9월 7일
국적 - 이란
주 포지션 - 중앙 미드필더
주요 소속팀 - CA 오사수나
자바드 네쿠남은 A매치에 무려 151차례나 나서 이란 역대 A매치
최다 출전 1위에 올랐다. 여기에 미드필더로선 훌륭한 39득점을
기록, 이란의 대표 선수로 자리 매김 했다.
2007년 1월 오사수나로 이적한 네쿠남은 2007년부터 2012년,
그리고 2014년부터 2015년까지 두 차례에 걸쳐 스페인에서
커리어를 보냈고 구단에서 큰 영향력을 발휘했다.
네쿠남이 활약하던 당시 해외에서 아시아 선수가
좋은 활약을 펼치는 것은 드문 일이었다.
13위 : 사미 알-자베르
생년월일 - 1972년 12월 11일
국적 - 사우디아라비아
주 포지션 - 처진 공격수
주요 소속팀 - 알-힐랄 SFC
사미 알-자베르는 사우디아라비아 역대 최고의 선수 중 한 명.
알-자베르가 데뷔하기 전 사우디아라비아는 월드컵에 출전한
적이 단 한 차례도 없었다. 알-자베르가 합류한 이후 사우디는
연속 4회나 월드컵 무대에 발을 들여 놓는다.
사우디아라비아의 자랑 알-자베르는 A매치 156경기 출전에
46골을 득점하여 사우디 역대 최다 득점 2위에 위치했다.
알-자베르는 자국 리그 팀 알-힐랄에서 커리어의 대부분을 보냈다.
그래도 2001년 찰나의 순간이긴 하나 울버햄튼으로 임대를 떠났는데,
고작 4경기 출전에 그치고 만다.
12위 : 메흐디 마다비키아
생년월일 - 1977년 7월 24일
국적 - 이란
주 포지션 - 라이트백
주요 소속팀 - 함부르크 SV
주로 오른쪽에서 풀백이나 윙어로 경기에 나선 마다비키아는
폭발적인 스피드와 기술, 정확한 크로싱 능력으로 유명했다.
전 이란 대표팀 주장이었던 마다비키아는 1997년과 2003년
각각 아시아 올해의 영 플레이어 상과 올해의 선수상을
수상하게 된다.
미국 전 유명한 퍼포먼스를 포함 마다비키아는 1998년
프랑스 월드컵에서 인상적인 모습을 보여주었고, 이를 통해
분데스리가에 입성한다.
VfL 보훔에서 1시즌 임대 생활을 지낸 뒤 마다비키아는
드디어 1999년 함부르크에 입단하였다. 함부르크에서
지낸 8년 동안 마다비키아는 구단 올해의 선수상을
2번이나 수상하고, 챔피언스리그에서 활약하는 한편
02/03시즌 분데스리가 어시스트 1위에 올랐다.
11위 : 알리 다에이
생년월일 - 1969년 3월 21일
국적 - 이란
주 포지션 - 스트라이커
주요 소속팀 - 페르세폴리스 FC
‘이란의 마라도나’ 다에이는 현재 전 세계를 통틀어 A매치
통산 최다 득점자 지위를 유지하고 있다. 149경기에 출전,
무려 109득점이라는 어마어마한 수치를 기록한 다에이의
자리를 위협할 선수는 현재 호날두 밖엔 없는 상황.
현역 시절 다에이는 뛰어난 공중볼 능력과 타고난 골감각을
자랑하던 선수였다. 비록 다에이의 클럽 활약도는 대표팀에
비해 덜 화려하나, 그래도 98/99시즌 뮌헨과 함께 분데스리가
트로피를 차지하기도 했고 1999년 말엔 아시아 올해의 선수상을
수상하기도 한다.
10위 : 카가와 신지
생년월일 - 1989년 3월 17일
국적 - 일본
주 포지션 - 공격형 미드필더
주요 소속팀 - 보루시아 도르트문트
카가와 신지의 영리한 두뇌와 뛰어난 기술, 그리고 재빠른 움직임은
신지를 아시아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선수 중 한 명으로 이끌었다.
이미 23살이라는 나이에 도르트문트에서 분데스리가 우승 2회를
경험한 신지는 1200만 파운드(현재 약 187억 원)이라는 이적료를
통해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로 이적하게 된다.
비록 맨유에선 부상에 신음하며 출전 시간 부족에 시달렸지만,
그래도 12/13시즌 일본 선수 역사상 최초로 프리미어리그 우승에
함께 할 수 있었다.
일본 대표팀에서 97경기를 소화하며 31골을 득점한 신지는
2012년 아시아 올해의 선수상을 수상했다.
9위 : 나카무라 슌스케
생년월일 - 1978년 6월 24일
국적 - 일본
주 포지션 - 공격형 미드필더
주요 소속팀 - 셀틱 FC
안정적인 테크닉에 엄청난 데드볼 능력을 갖췄던 슌스케는
셀틱에서 보낸 4년 동안 인상적일 활약을 선보인 끝에
셀틱 팬들에게 가장 사랑 받는 선수 중 한 명이 됐다.
특히 06/07시즌 맨유와의 챔피언스리그 경기에서 기록한
아름다운 프리킥 골은 셀틱 서포터즈의 기억에 오래토록
남을 명장면이 분명했다.
2007년은 슌스케에게 잊을 수 없는 한 해였다. 06/07시즌이
종료된 후 슌스케는 PFA 올해의 선수, 스코틀랜드 축구 기자단
선정 올해의 선수를 수상하는 동시 2007년 발롱도르 후보에
오르는 영광을 안았다.
현재 슌스케는 43살의 나이에도 요코하마에서 선수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하지만 같은 팀 동료인 미우라 카즈요시가
있기에 슌스케의 나이는 다소 어리게(?) 느껴진다.
8위 : 홍명보
생년월일 - 1969년 2월 12일
국적 - 대한민국
주 포지션 - 센터백
주요 소속팀 - 포항 스틸러스
홍명보는 한국 축구계의 아이콘으로, 넓은 시야와 정확한 패싱력,
그리고 꾸준함을 자랑하던 선수였다. A매치 통산 136경기에 출전한
홍명보는 아직까지 대한민국 역대 A매치 최다 출전 선수다.
2002년 한·일 월드컵에 주장으로 출전한 홍명보는 뛰어난 퍼포먼스를
발휘, 대한민국의 월드컵 4위 수성에 기여하는 한편 아시아 역사상
최초로 월드컵 브론즈볼 상을 수상하기에 이른다.
또 2002년 월드컵에 출전한 홍명보는 역시나 아시아 최초로
월드컵 4연속 출전이라는 대기록마저 작성했다.
7위 : 김주성
생년월일 - 1966년 1월 17일
국적 - 대한민국
주 포지션 - 레프트윙
주요 소속팀 - 대우 로얄즈
IFFHS 선정 20세기 아시아 선수 2위에 오른 김주성은 폭발적인
스피드와 ‘야생마’를 떠오르게 하는 트레이드마크 장발로 팬들의
기억에 남은 선수였다.
커리어의 대부분을 대우 로얄즈에서 보낸 김주성은 1992년
2시즌 동안 VfL 보훔에 임대를 떠나기도 했다.
1989년부터 1991년까지 김주성은 아시아 올해의 선수상
3연패를 달성하는데, 이는 아직까지 깨지지 않은 기록.
6위 : 나카타 히데토시
생년월일 - 1977년 1월 22일
국적 - 일본
주 포지션 - 공격형 미드필더
주요 소속팀 - 파르마 FC
나카타 히데토시는 일본 역사상 가장 재능
넘쳤던 선수 가운데 한 명으로 평가받고 있다.
아시아 올해의 선수상 2회, 그리고 발롱도르 후보 선정 3회,
FIFA 올해의 선수상 후보 선정 4회라는 대단한 업적을 쌓은
히데토시는 특유의 시야와 밸런스, 창의력으로 유명했다.
히데토시는 1998년 월드컵 아시아 지역 예선에서 총 5골을
득점해 일본 역사상 첫 월드컵 출전 티켓 확보를 이끌었다.
여기에 세리에 A에서 보낸 7년의 시간 동안 좋은 모습을
보여준 나카타는 2002년 파르마 소속으로 코파 이탈리아
결승전에서 득점에 성공하기도 했다.
그러다 2006년 볼턴에서 임대 생활을 보내던 나카타는
29세라는 젊은 나이에 돌연 은퇴를 선택했다.
5위 : 혼다 케이스케
생년월일 - 1986년 6월 13일
국적 - 일본
주 포지션 - 공격형 미드필더
주요 소속팀 - PFC CSKA 모스크바
활동량과 창의성, 그리고 데드볼 능력으로 기억되는 혼다는
지난 10년 동안 일본에 있어 한결 같은 존재였다.
공격형 미드필더로 활약한 혼다는 일본 대표팀으로 98경기에
출전했고 2010년 남아공 월드컵에서 좋은 활약을 뽐냈다.
1년 후 열린 2011년 아시안 컵에서 역시 뛰어난 퍼포먼스로
일본에게 우승컵을 선사, 대회 최우수 선수에 선정된다.
클럽 커리어 대부분을 유럽에서 보낸 혼다는 네덜란드와
러시아에서 리그 우승을 비롯, 많은 트로피를 거머쥐었다.
4위 : 박지성
생년월일 - 1981년 3월 30일
국적 - 대한민국
주 포지션 - 레프트윙
주요 소속팀 -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박지성은 아시아 축구를 세계에 알리는 데 기여했다.
박지성은 본인의 전성기를 역사상 최고의 감독 퍼거슨이 지휘하던
당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보냈고, 2008년 아시아 역사상
최초로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경험하게 된다.
박지성은 맨유에서 프리미어리그 우승 4회를 기록했고, 2005년엔
발롱도르 후보에 선정되었으며 그 유명한 2002년 한·일 월드컵에선
대한민국 대표팀의 핵심 자원으로 경기에 나섰다.
3위 : 손흥민
생년월일 - 1992년 7월 8일
국적 - 대한민국
주 포지션 - 처진 공격수
주요 소속팀 - 토트넘 핫스퍼 FC
2015년 토트넘으로 이적한 후 손흥민은 차근차근 성장을 거듭한
끝에 프리미어리그와 현 축구계를 대표하는 선수가 되었다.
카리스마 넘치는 손흥민은 2020년 가디언이 선정한 올해의 축구선수
남자부 TOP 100에서 22위에 오르기도 했고, 2019년 발롱도르 땐
똑같은 22위에 랭크, 아시아 선수 가운데 발롱도르에서 가장 높은
순위에 등극하였다.
마지막 화룡정점으로 손흥민은 19/20시즌 번리 전 ‘오관 돌파’
득점을 통해 2020년 FIFA 푸스카스 상을 수상한다.
2위 : 파울리노 알칸타라
생년월일 - 1896년 10월 7일
국적 - 필리핀
주 포지션 - 처진 공격수
주요 소속팀 - FC 바르셀로나
바르셀로나 소속으로 395경기에 출전하여 143골을 득점한
알칸타라는 구단 역대 최다 득점 7위에 올라있다. 알칸타라가
뛰던 시절 이후 바르셀로나는 세계적인 구단으로 성장했다.
스페인 아버지와 필리핀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필리핀 출신 알칸타라는 3살에 스페인으로 건너간다.
1912년 채 16살이 되기도 전에 바르셀로나 성인 팀에 데뷔한
알칸타라는 구단 역사상 최연소 출전 기록과 득점 기록을 동시에
보유하게 되었다.
1927년 31살에 은퇴한 알칸타라는 이후 의사가 된다.
1위 : 차범근
생년월일 - 1953년 5월 22일
국적 - 대한민국
주 포지션 - 처진 공격수
주요 소속팀 - 아인트라흐트 프랑크푸르트
차범근은 A매치 통산 136경기 출전, 58골 득점을 기록하여
대한민국 역대 A매치 최다 득점자에 이름을 남겼다. 게다가
겨우 24살의 나이에 역대 최연소 센추리 클럽에 가입한다.
차범근이 1980년대 최고의 선수 중 한 명으로 떠오르며
자신의 가치를 세상에 선보인 곳은 다름 아닌 분데스리가.
엄청난 스피드와 탁월한 득점력을 과시한 차범근은 프랑크푸르트와
레버쿠젠 소속으로 분데스리가 통산 98골을 득점했고, 두 팀에서
모두 UEFA 컵 트로피를 들어올리기도 했다.
신탁은행 시절부터 레버쿠젠 시절까지 13년에 걸친 그의 축구 경력이
차범근을 아시아 역사상 최고의 선수로 만들어주었다.
https://www.90min.com/posts/the-greatest-asian-footballers-of-all-time-ranked
20위 : 오카자키 신지
생년월일 - 1986년 4월 16일
국적 - 일본
주 포지션 - 처진 공격수
주요 소속팀 - 레스터 시티 FC
프리미어리그 우승을 경험한 단 2명의 일본인 선수 중 한 명.
오카자키 신지는 그 유명한 15/16시즌 레스터의 동화 같은
우승의 일원이었다.
특히 당시 뉴캐슬 전에서 그림 같은 오버헤드 킥을 작렬,
구단이 우승에 한 걸음 더 가까이 다가가는 계기를 마련했다.
여기에 A매치 현재 119경기 50득점을 기록하고 있는 신지는
일본 역대 A매치 최다 득점 3위, 최다 출전 4위에 올라있다.
19위 : 사이드 알-오와이란
생년월일 - 1967년 8월 19일
국적 - 사우디아라비아
주 포지션 - 공격형 미드필더
주요 소속팀 - 알 샤바브 FC
알-오와이란은 사우디아라비아 축구
역사상 최고의 순간을 장식한 바 있다.
그건 바로 1994년 미국 월드컵 조별 예선 벨기에 전.
전반 5분 알-오와이란이 엄청난 드리블을 선보이며 결승골을
득점했고, 이로 인해 사우디아라비아는 역사상 최초이자 최후의
월드컵 토너먼트 라운드 진출이라는 성적을 달성할 수 있었다.
특히 이 득점은 마라도나를 연상케 하는, 사우디아라비아를
넘어 월드컵 역대 상징적인 장면 중 하나이기도 하다.
다재다능한 공격형 미드필더였던 알-오와이란은 또한 리그에서도
뛰어난 활약을 남겼다. 소속팀 알 샤바브에서 통산 588경기에
출전해 238골을 기록한 알-오와이란은 구단에 큰 힘이 되었다.
18위 : 미우라 카즈요시
생년월일 - 1967년 2월 26일
국적 - 일본
주 포지션 - 스트라이커
주요 소속팀 - 베르디 가와사키
미우라 카즈요시는 현재 선수 생활을 하고 있는 골잡이 가운데
가장 고령이자, 54살이라는 나이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J1 리그
소속 요코하마 FC에서 강렬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카즈요시의 롱런에만 초점을 맞추는 시선은 자칫
전성기 시절 카즈요시의 기량을 간과하게 만들 수도 있다.
1992년 아시아 올해의 선수상을 수상하는 카즈요시는 1982년
브라질로 축구 유학을 떠난 뒤 브라질 리그에서 커리어 초반을
보냈고, 그 곳에서 뛰어난 기술적 기량과 스피드, 그리고 타고난
볼 컨트롤을 바탕으로 다득점을 양산했다.
카즈요시는 A매치 통산 89경기 출전에 55골을 득점하여
일본 역대 A매치 최다 득점 부분 2위에 올라있다.
17위 : 마제드 압둘라
생년월일 - 1959년 11월 1일
국적 - 사우디아라비아
주 포지션 - 처진 공격수
주요 소속팀 - 알-나스르 FC
마제드 압둘라는 알-나스트에서만 21년을 보낸 원 클럽 맨.
하지만 압둘라가 국제적인 명성을 얻은 무대는 바로 국가 대항전.
사우디아라비아 대표팀에서 117경기 출전, 72골을 득점해 조국의
통산 A매치 최다 득점자 1위에 등극했다.
특히 1984년과 1988년 두 대회 연속 진출한 아시안 컵 결승전에서
2경기 합쳐 3골을 득점해 사우디아라비아의 아시안 컵 연속 우승에
큰 보탬이 되기도 했다.
16위 : 가마모토 구니시게
생년월일 - 1944년 4월 15일
국적 - 일본
주 포지션 - 스트라이커
주요 소속팀 - 얀마 디젤
가마모토 구니시게는 선수 생활을 오직 얀마 디젤에서만 보내며,
251경기 출전에 202득점이라는 대단한 기록을 남기고 떠났다.
마찬가지로 A매치 76경기 75득점이라는 가공할만한 득점력을
보여준 구니시게는 현 일본 역대 A매치 최다 득점자이다.
1968년 멕시코시티 올림픽에 출전한 구니시게는 대회 통틀어
7골을 득점, 대회 득점왕을 차지함과 동시에 동메달을 목에 건다.
15위 : 유니스 마무드
생년월일 - 1983년 2월 3일
국적 - 이라크
주 포지션 - 스트라이커
주요 소속팀 - 알-가라파 SC
유니스 마무드는 조국 이라크 축구 역사의 기념비적인 순간을
장식해 이라크의 축구 영웅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2004년 아테네 올림픽에 출전한 이라크는 당시 조별 예선에서
포르투갈을, 그리고 8강 전에선 호주를 잡아 4강에 진출한다.
당시 스쿼드의 한 자리를 차지한 선수가 바로 마무드.
그리고 바로 2007년 아시안 컵 결승, 마무드가 헤딩골로
골망을 가른 끝에 이라크가 감격적인 우승을 차지하게 되고,
마무드는 눈부신 활약으로 자국에 희망을 선사했다.
A매치 148경기 출전에 57득점이라는 수치를 기록한 마무드는
이라크 역대 A매치 최다 출전 1위와 최다 득점 2위에 올라있다.
14위 : 자바드 네쿠남
생년월일 - 1980년 9월 7일
국적 - 이란
주 포지션 - 중앙 미드필더
주요 소속팀 - CA 오사수나
자바드 네쿠남은 A매치에 무려 151차례나 나서 이란 역대 A매치
최다 출전 1위에 올랐다. 여기에 미드필더로선 훌륭한 39득점을
기록, 이란의 대표 선수로 자리 매김 했다.
2007년 1월 오사수나로 이적한 네쿠남은 2007년부터 2012년,
그리고 2014년부터 2015년까지 두 차례에 걸쳐 스페인에서
커리어를 보냈고 구단에서 큰 영향력을 발휘했다.
네쿠남이 활약하던 당시 해외에서 아시아 선수가
좋은 활약을 펼치는 것은 드문 일이었다.
13위 : 사미 알-자베르
생년월일 - 1972년 12월 11일
국적 - 사우디아라비아
주 포지션 - 처진 공격수
주요 소속팀 - 알-힐랄 SFC
사미 알-자베르는 사우디아라비아 역대 최고의 선수 중 한 명.
알-자베르가 데뷔하기 전 사우디아라비아는 월드컵에 출전한
적이 단 한 차례도 없었다. 알-자베르가 합류한 이후 사우디는
연속 4회나 월드컵 무대에 발을 들여 놓는다.
사우디아라비아의 자랑 알-자베르는 A매치 156경기 출전에
46골을 득점하여 사우디 역대 최다 득점 2위에 위치했다.
알-자베르는 자국 리그 팀 알-힐랄에서 커리어의 대부분을 보냈다.
그래도 2001년 찰나의 순간이긴 하나 울버햄튼으로 임대를 떠났는데,
고작 4경기 출전에 그치고 만다.
12위 : 메흐디 마다비키아
생년월일 - 1977년 7월 24일
국적 - 이란
주 포지션 - 라이트백
주요 소속팀 - 함부르크 SV
주로 오른쪽에서 풀백이나 윙어로 경기에 나선 마다비키아는
폭발적인 스피드와 기술, 정확한 크로싱 능력으로 유명했다.
전 이란 대표팀 주장이었던 마다비키아는 1997년과 2003년
각각 아시아 올해의 영 플레이어 상과 올해의 선수상을
수상하게 된다.
미국 전 유명한 퍼포먼스를 포함 마다비키아는 1998년
프랑스 월드컵에서 인상적인 모습을 보여주었고, 이를 통해
분데스리가에 입성한다.
VfL 보훔에서 1시즌 임대 생활을 지낸 뒤 마다비키아는
드디어 1999년 함부르크에 입단하였다. 함부르크에서
지낸 8년 동안 마다비키아는 구단 올해의 선수상을
2번이나 수상하고, 챔피언스리그에서 활약하는 한편
02/03시즌 분데스리가 어시스트 1위에 올랐다.
11위 : 알리 다에이
생년월일 - 1969년 3월 21일
국적 - 이란
주 포지션 - 스트라이커
주요 소속팀 - 페르세폴리스 FC
‘이란의 마라도나’ 다에이는 현재 전 세계를 통틀어 A매치
통산 최다 득점자 지위를 유지하고 있다. 149경기에 출전,
무려 109득점이라는 어마어마한 수치를 기록한 다에이의
자리를 위협할 선수는 현재 호날두 밖엔 없는 상황.
현역 시절 다에이는 뛰어난 공중볼 능력과 타고난 골감각을
자랑하던 선수였다. 비록 다에이의 클럽 활약도는 대표팀에
비해 덜 화려하나, 그래도 98/99시즌 뮌헨과 함께 분데스리가
트로피를 차지하기도 했고 1999년 말엔 아시아 올해의 선수상을
수상하기도 한다.
10위 : 카가와 신지
생년월일 - 1989년 3월 17일
국적 - 일본
주 포지션 - 공격형 미드필더
주요 소속팀 - 보루시아 도르트문트
카가와 신지의 영리한 두뇌와 뛰어난 기술, 그리고 재빠른 움직임은
신지를 아시아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선수 중 한 명으로 이끌었다.
이미 23살이라는 나이에 도르트문트에서 분데스리가 우승 2회를
경험한 신지는 1200만 파운드(현재 약 187억 원)이라는 이적료를
통해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로 이적하게 된다.
비록 맨유에선 부상에 신음하며 출전 시간 부족에 시달렸지만,
그래도 12/13시즌 일본 선수 역사상 최초로 프리미어리그 우승에
함께 할 수 있었다.
일본 대표팀에서 97경기를 소화하며 31골을 득점한 신지는
2012년 아시아 올해의 선수상을 수상했다.
9위 : 나카무라 슌스케
생년월일 - 1978년 6월 24일
국적 - 일본
주 포지션 - 공격형 미드필더
주요 소속팀 - 셀틱 FC
안정적인 테크닉에 엄청난 데드볼 능력을 갖췄던 슌스케는
셀틱에서 보낸 4년 동안 인상적일 활약을 선보인 끝에
셀틱 팬들에게 가장 사랑 받는 선수 중 한 명이 됐다.
특히 06/07시즌 맨유와의 챔피언스리그 경기에서 기록한
아름다운 프리킥 골은 셀틱 서포터즈의 기억에 오래토록
남을 명장면이 분명했다.
2007년은 슌스케에게 잊을 수 없는 한 해였다. 06/07시즌이
종료된 후 슌스케는 PFA 올해의 선수, 스코틀랜드 축구 기자단
선정 올해의 선수를 수상하는 동시 2007년 발롱도르 후보에
오르는 영광을 안았다.
현재 슌스케는 43살의 나이에도 요코하마에서 선수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하지만 같은 팀 동료인 미우라 카즈요시가
있기에 슌스케의 나이는 다소 어리게(?) 느껴진다.
8위 : 홍명보
생년월일 - 1969년 2월 12일
국적 - 대한민국
주 포지션 - 센터백
주요 소속팀 - 포항 스틸러스
홍명보는 한국 축구계의 아이콘으로, 넓은 시야와 정확한 패싱력,
그리고 꾸준함을 자랑하던 선수였다. A매치 통산 136경기에 출전한
홍명보는 아직까지 대한민국 역대 A매치 최다 출전 선수다.
2002년 한·일 월드컵에 주장으로 출전한 홍명보는 뛰어난 퍼포먼스를
발휘, 대한민국의 월드컵 4위 수성에 기여하는 한편 아시아 역사상
최초로 월드컵 브론즈볼 상을 수상하기에 이른다.
또 2002년 월드컵에 출전한 홍명보는 역시나 아시아 최초로
월드컵 4연속 출전이라는 대기록마저 작성했다.
7위 : 김주성
생년월일 - 1966년 1월 17일
국적 - 대한민국
주 포지션 - 레프트윙
주요 소속팀 - 대우 로얄즈
IFFHS 선정 20세기 아시아 선수 2위에 오른 김주성은 폭발적인
스피드와 ‘야생마’를 떠오르게 하는 트레이드마크 장발로 팬들의
기억에 남은 선수였다.
커리어의 대부분을 대우 로얄즈에서 보낸 김주성은 1992년
2시즌 동안 VfL 보훔에 임대를 떠나기도 했다.
1989년부터 1991년까지 김주성은 아시아 올해의 선수상
3연패를 달성하는데, 이는 아직까지 깨지지 않은 기록.
6위 : 나카타 히데토시
생년월일 - 1977년 1월 22일
국적 - 일본
주 포지션 - 공격형 미드필더
주요 소속팀 - 파르마 FC
나카타 히데토시는 일본 역사상 가장 재능
넘쳤던 선수 가운데 한 명으로 평가받고 있다.
아시아 올해의 선수상 2회, 그리고 발롱도르 후보 선정 3회,
FIFA 올해의 선수상 후보 선정 4회라는 대단한 업적을 쌓은
히데토시는 특유의 시야와 밸런스, 창의력으로 유명했다.
히데토시는 1998년 월드컵 아시아 지역 예선에서 총 5골을
득점해 일본 역사상 첫 월드컵 출전 티켓 확보를 이끌었다.
여기에 세리에 A에서 보낸 7년의 시간 동안 좋은 모습을
보여준 나카타는 2002년 파르마 소속으로 코파 이탈리아
결승전에서 득점에 성공하기도 했다.
그러다 2006년 볼턴에서 임대 생활을 보내던 나카타는
29세라는 젊은 나이에 돌연 은퇴를 선택했다.
5위 : 혼다 케이스케
생년월일 - 1986년 6월 13일
국적 - 일본
주 포지션 - 공격형 미드필더
주요 소속팀 - PFC CSKA 모스크바
활동량과 창의성, 그리고 데드볼 능력으로 기억되는 혼다는
지난 10년 동안 일본에 있어 한결 같은 존재였다.
공격형 미드필더로 활약한 혼다는 일본 대표팀으로 98경기에
출전했고 2010년 남아공 월드컵에서 좋은 활약을 뽐냈다.
1년 후 열린 2011년 아시안 컵에서 역시 뛰어난 퍼포먼스로
일본에게 우승컵을 선사, 대회 최우수 선수에 선정된다.
클럽 커리어 대부분을 유럽에서 보낸 혼다는 네덜란드와
러시아에서 리그 우승을 비롯, 많은 트로피를 거머쥐었다.
4위 : 박지성
생년월일 - 1981년 3월 30일
국적 - 대한민국
주 포지션 - 레프트윙
주요 소속팀 -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박지성은 아시아 축구를 세계에 알리는 데 기여했다.
박지성은 본인의 전성기를 역사상 최고의 감독 퍼거슨이 지휘하던
당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보냈고, 2008년 아시아 역사상
최초로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경험하게 된다.
박지성은 맨유에서 프리미어리그 우승 4회를 기록했고, 2005년엔
발롱도르 후보에 선정되었으며 그 유명한 2002년 한·일 월드컵에선
대한민국 대표팀의 핵심 자원으로 경기에 나섰다.
3위 : 손흥민
생년월일 - 1992년 7월 8일
국적 - 대한민국
주 포지션 - 처진 공격수
주요 소속팀 - 토트넘 핫스퍼 FC
2015년 토트넘으로 이적한 후 손흥민은 차근차근 성장을 거듭한
끝에 프리미어리그와 현 축구계를 대표하는 선수가 되었다.
카리스마 넘치는 손흥민은 2020년 가디언이 선정한 올해의 축구선수
남자부 TOP 100에서 22위에 오르기도 했고, 2019년 발롱도르 땐
똑같은 22위에 랭크, 아시아 선수 가운데 발롱도르에서 가장 높은
순위에 등극하였다.
마지막 화룡정점으로 손흥민은 19/20시즌 번리 전 ‘오관 돌파’
득점을 통해 2020년 FIFA 푸스카스 상을 수상한다.
2위 : 파울리노 알칸타라
생년월일 - 1896년 10월 7일
국적 - 필리핀
주 포지션 - 처진 공격수
주요 소속팀 - FC 바르셀로나
바르셀로나 소속으로 395경기에 출전하여 143골을 득점한
알칸타라는 구단 역대 최다 득점 7위에 올라있다. 알칸타라가
뛰던 시절 이후 바르셀로나는 세계적인 구단으로 성장했다.
스페인 아버지와 필리핀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필리핀 출신 알칸타라는 3살에 스페인으로 건너간다.
1912년 채 16살이 되기도 전에 바르셀로나 성인 팀에 데뷔한
알칸타라는 구단 역사상 최연소 출전 기록과 득점 기록을 동시에
보유하게 되었다.
1927년 31살에 은퇴한 알칸타라는 이후 의사가 된다.
1위 : 차범근
생년월일 - 1953년 5월 22일
국적 - 대한민국
주 포지션 - 처진 공격수
주요 소속팀 - 아인트라흐트 프랑크푸르트
차범근은 A매치 통산 136경기 출전, 58골 득점을 기록하여
대한민국 역대 A매치 최다 득점자에 이름을 남겼다. 게다가
겨우 24살의 나이에 역대 최연소 센추리 클럽에 가입한다.
차범근이 1980년대 최고의 선수 중 한 명으로 떠오르며
자신의 가치를 세상에 선보인 곳은 다름 아닌 분데스리가.
엄청난 스피드와 탁월한 득점력을 과시한 차범근은 프랑크푸르트와
레버쿠젠 소속으로 분데스리가 통산 98골을 득점했고, 두 팀에서
모두 UEFA 컵 트로피를 들어올리기도 했다.
신탁은행 시절부터 레버쿠젠 시절까지 13년에 걸친 그의 축구 경력이
차범근을 아시아 역사상 최고의 선수로 만들어주었다.
https://www.90min.com/posts/the-greatest-asian-footballers-of-all-time-ranked